토론 게시판   / 글 번호 572950   
  문장의 품격
  0 R118[zakukun]
조회 2218    추천 1   덧글 4   트랙백 0 / 2017.04.09 01:10:13

저는 개인적으로 문장을 쓸 때, 맞춤법이나 주어와 술어의 관계에 대해 예민하게 검토하는 편입니다.

보통 이야기의 도입부라고 하면 초반 몇 페이지라든가, 프롤로그라든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합니다만, 저는 첫 문장이야말로 진정한 도입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문자 그대로의 첫 문장을 가리키는 건 아닙니다. 제대로 된 주어와 술어가 있고 평범한 어미로 끝나는 첫 번째 문장을 가리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첫 문장을 보고 작가의 수준을 파악합니다. 과연 이 사람이 제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짐작해보는 거죠.

문장이 엉망이라면, 그 작가가 좋은 이야기를 쓸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의 안에서 들끓고 있는 이야기가 제아무리 환상적인 것이라 해도, 독자들이 섭취할 수 있도록 하려면 문장으로 정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장이 흐트러진다는 것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흐트러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야기의 매력을 완벽히 전달할 수 없게 됩니다.


송나라 구양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들 아시는 세 단어죠.

(아는 척 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사실은 위키피디아 검색해봤습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은 작가에게 절대불변의 가치관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다독이라는 말을 제일로 칩니다. 왜냐.

다작과 다상량은 결국 작가라는 단절된 세계 안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일입니다. 글을 쓰고 맺는 것에 작가 이외의 사람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작가 외에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써내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독은 다릅니다. 다른 이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이의 세계를 엿본다는 것입니다. 내 세계와 다른 이의 세계가 맞닿은 곳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쓰고 생각하는 것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 내 문장과 타인의 문장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의 글을 필사해보라는 말도 이래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내 문장과 다른 사람의 문장을 비교해보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단지 다른 작가처럼 쓰는 연습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베끼기에 불과하지요.

중요한 것은 차이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딱히 글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어떤 문장을 접했을 때 그 문장의 허술한 부분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이미 좋은 문장을 구분할 수 있는 많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죠. 따로 우리말의 얼개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은 이상 완벽하게 분해하여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헌데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필터가 작용하지 않습니다. 엉망인 문장을 봐도 그런가보다.’, 내가 쓰는 문장이 엉망이어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하고 넘어가고 맙니다. 더 끔찍한 것은, 누군가 문장이 허술하다고 이야기를 해도 어디가 이상한지 파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독자들에게 내 이야기가 가진 재미를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문장의 품격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문장을 많이 읽은 뒤 내 것과 비교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고, 그 차이점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많이 쓰는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문장은 글의 얼굴이자, 감동이라는 결승무대로 가기 위한 예선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그
0 R118  lv 0 46% / 46 글 8 | 댓글 37  

게시물 주소 http://seednovel.co.kr/pb/572950
트랙백 주소 http://seednovel.co.kr/pb/tb/572950
4424 bytes
목록 공유하기
1 비밀소년 04/11/12:03
글을 많이 읽으며 자신의 글을 성장을 한다라..
좋은 글,나쁜 글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못 하겠네요..
아무리 좋은 글이라고 해도 그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를 못 한다면
그져 돼지의 진주목거리급정도됩니다.
나쁜 글이라면 맞춤법이 많이 안 좋은 글이죠 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고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도록 써야 하죠 좋은 글과나쁜 글은 똑같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데.. 철학적이네요.
0 R118 04/11/01:21
철학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알아먹을 수 있게 문장을 써야 누가 읽어주기라도 할 거다.'라는 거죠.
1 비밀소년 04/12/12:19
음.. 딱딱하네요;;
0 김태광 04/11/07:41
좋은 의견입니다. 공개공모전을 몇회 지켜보면서 느낀것이 그런 연출이전의 기본 문장력의 문제였었는데, 문장구조 만들기 혹은 퇴고가 어렵게 생각된다면 딱딱한 문법교재말고 교정 교열쪽 입문서만 훑어봐도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고 첨언 달아봅니다. 의미없는 동어반복이나 헤메는 목적어 혹은 부사, 주렁주렁 달린 수식어 등이 보기좋게 정리되면 글의 몰입도나 가독성이 크게 개선되고 독자에게 글의 테마를 더욱 효과적으로 연출 할수 있을 거예요.

토론 게시판
번호 제목 이름 시간 조회 추천
이곳은 토론란입니다. (회칙필독준수) 운영자 시드지기 08.10.29 11018
578144 배틀물과 일상계 라노벨 설정. [2] 0 철신 19.03.24 489 0
578069 현대 판타지와 중세판타지 중 어느쪽이 작가가 구상하기 어... [7] 0 이카니티 19.02.13 649 0
577966 이거 님들 생각은 어떤가요? [2] 0 철신 19.01.03 832 0
577962 판타지 세계관 설정. [3] 0 철신 19.01.03 746 0
577904 음.. 좋은 판타지 라노벨 캐릭터의 매력. [5] 0 철신 18.12.31 743 0
577391 오컬트를 주제로 한 라이트노벨 [2] 0 로드드라콘 18.05.15 934 0
576129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6] 0 신마카 18.02.12 1528 1
576124 명작 라노벨과 평작 라노벨의 차이는 뭘까요? [15] 0 철신 18.02.12 1775 0
576095 판타지소설을 1인칭으로 써도 좋을까요? [4] 0 마스퍼 18.02.09 1403 0
575686 귀환자의 마법은 특별해야 합니다 (프람 성별) [1] 0 요우치카츙츙 17.12.14 1679 0
575610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 [43] 1 독설지망 17.12.02 2451 0
573824 오타쿠가 욕을 먹는 이유와 라노벨-글쎄요 [15] 3 율연 17.06.21 2873 0
573821 오타쿠가 욕을 먹는 이유와 라노벨 [8] 1 오렌지빌런 17.06.21 3428 1
573686 간단하게 같이 생각해보는 라노벨 이론 - 특별한 힘 편 [1] 0 경악론 17.06.06 2156 3
573590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먼치킨의 선은? [5] 0 WhitePanther 17.05.28 1967 0
573527 개인적으로 남자가 좀 상대적으로 능력이 없는 라노베 보면 [3] 1 백년식당 17.05.25 2109 0
573212 이거 왜이러는거죠.. [2] 0 김현성 17.04.29 1892 0
572970 글을 쓰면서 걱정하는 거 [2] 1 비밀소년 17.04.10 2088 0
572950 문장의 품격 [4] 0 R118 17.04.09 2219 1
572941 그만 봤으면 좋겠는 토론글 유형 [1] 2 엽토군 17.04.08 2096 0
572033 반-클리셰나 반유행적인 작품을 만들때엔 어떻게 하는게 좋... [7] 1 백년식당 17.03.04 2304 0
571457 간단하게 같이 생각해보는 라노벨 이론 - 유행편 [3] 0 경악론 16.12.27 2698 1
571190 간단하게 같이 생각해보는 작법 이론 - 번역체 편 [3] 0 경악론 16.11.20 3235 3
571129 간단하게 같이 생각해보는 라노벨 이론 - 이세계 전생 편 [3] 0 경악론 16.11.13 2828 1
571070 간단하게 같이 생각해보는 라노벨 이론 - 초능력편 2 [4] 0 경악론 16.11.05 3842 2
검색된 Page
전체목록 < 1 2 3 4 5 6 7 8 9 10 >


Page loading time:0.03s, Powered by pimangBoard v3
회원가입 | 정보찾기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취미 게시판

감상/추천

토론/비평 게시판

월페이퍼


▶ Today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