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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MENDOKUSAI[yang971108]
조회 3009    추천 0   덧글 10   트랙백 0 / 2018.02.22 00:09:25

Prologue.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태양을 차단한 하늘 아래, 그곳에 무()에 가까운 황야가 있다. 황량한 사막도 이보다 황폐하지는 않으리라.

가끔 건조한 바람이 불어올 뿐인 황야는, 생물이 자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맑은 공기는 탁한 먼지로, 투명한 물은 더러운 진흙탕으로, 무성한 초목은 전부 모래로 변한 지 오래.

그럼에도 황야는, 아직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며칠간 굶주린 새떼가 뜻밖에 발견한 먹잇감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부리를 움직이며, 먹기 좋은 크기로 육질을 뜯어내 집어삼키기만을 반복한다. 배부름에 만족해 울부짖는 새들은 있어도, 서로의 먹이를 쟁탈하려 거칠게 포효하는 새는 찾아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메마른 땅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그곳에는 단순한 사체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니.

 

 

자욱한 화염의 연기도 소년의 모습을 감춰주진 못했다. 달빛보다 명량한 은발이 눈에 띄기 때문일까. 소년이 어디로 도망치든, 추격자는 그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았다.

무심한 만월은 소년의 위기를 외면하듯, 평소보다 밝게 빛나 퇴로를 비춘다. 달빛을 피해 몸을 숨길 곳은 주위에 없다.

소년은 최대한 머리를 비우려 노력했다.

문제점을 찾으려 과거를 회상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다 쓸데없이 체력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로지 추격자와의 거리를 벌려 따돌리는 것만이 살길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소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아, 하아, 후아아―……

상처를 무시하고 싶었지만, 조금의 움직임만으로도 느껴지는 고통이 자꾸만 현실을 일깨운다. 날카로운 날붙이에 베여 여기저기 찢겨진 의복도, 살점이 드러난 곳곳에 생긴 화상자국도 마찬가지다. 그중 제일 신경 쓰이는 건, 입고 있는 의복을 점차 검붉은 색으로 더럽혀가는 복부의 상처였다.

아무래도 복부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은 모양이다.

하지만 소년이 멈춰서는 일은 없었다.

소년은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뚫고 나온 화염의 연기 속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인다.

멈춰서는 안 돼…….

소년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거기까지야!”

소년을 향해 붉은 화염이 쇄도한 것은 추격자의 목소리가 울림과 거의 동시.

가까이서 일어난 폭발의 충격에, 소년의 몸이 튕겨나가 벽에 부딪혔다.

커헉⎯⎯!”

등을 강타당한 고통으로 순식간에 산소가 빠져나가고, 폐는 호흡하는 법을 잊었다. 떨어지며 받을 충격을 줄이기 위한 그 어떤 대비도 없이, 소년은 힘없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출혈이 시야를 가리고, 뼈의 위치가 어긋나버린 오른쪽 발목은 꿈틀댈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 숨이…….”

절박한 숨소리만이 귓속을 맴돈다.

몽롱해지는 의식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해도, 천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아 소년을 방해했다.

한가롭게 누워있을 시간 따위 없다.

잡히면 죽는다.

소년의 본능이 필사적으로 그리 외쳐댔다.

소년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발을 억지로 땅에 내디뎠다. 끊어진 발목의 통증이 뼈와 살을 꿰뚫었다. 뇌까지 전율하는 고통의 파동에 소년은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미 체력은 한계를 넘은 지 오래. 부러진 발목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고, 팔까지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심한 출혈 탓에 현저히 떨어진 체온은 소년이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 때문일까, 소년은 더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소년은 간신히 몸을 반쯤 일으켜, 서늘한 벽면에 기대 누웠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추격자의 그림자를 맥없이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추격자는, 이미 소년이 뚜렷이 보이는 위치까지 접근해 있었다.

아직도 발버둥 칠 체력이 남아 있는 거야?”

청량한 목소리와 함께 짙은 화염의 연기를 뚫고,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벚꽃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였다. 머리칼과 어울리는 진홍색의 제복으로 몸을 감싸고, 무방비한 소년과는 달리 손에는 날카로운 진검이 들려있다.

첫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영롱하게 빛내는 청록색의 눈동자, 유난히 붉은 입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소녀였지만-

 

움직일 때마다 검을 타고 흘러내리는 혈액이, 그런 소녀로부터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나저나 실망이야. 마왕이란 게 이리 약할 줄은 몰랐거든.”

성벽에 기대 누워 힘겹게 호흡하는 소년의 모습을 확인한 소녀의 얼굴에 더는 초조함이나 다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아니, 마왕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가?”

그런 혼잣말을 내뱉으며, 마침내 소녀는 소년의 정면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소년의 허벅지에 검을 찔러 넣었다. 가능한 천천히, 그러면서도 거침없이 소녀의 손이 움직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처참한 비명. 누가 들어도 소름 끼칠만한 울부짖음이었다.

우리에게 그런 짓을 해 놓고 편히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소녀는 크게 동요하는 기색 없이, 죽어가는 소년을 감정 없는 눈동자로 방관한다. 누군가의 몸에 검을 꽂는 행위에, 조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크흑-. ‘그런 짓이라니, 난 아무것도……, 몰라.”

마왕이라는 칭호로 불린 소년은 멀어져가는 의식을 억지로 부여잡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상황에서까지 굳이 거짓을 내뱉을 여유는 없다.

기억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으니.”

하지만 소녀는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시시한 변명거리를 들은 것처럼 더욱 확신했다.

눈앞의 남자가 자그마치 23만 명을 학살시킨 희대의 악마라는 것을-

 

역대 최악의 제7대 마왕, 이그나-알포네어.”

 

소녀가 이그나의 목을 치기 위해 높이 치켜든 것은 검붉은 혈흔으로 물든 진검. 그 검의 칼등에 새겨진 용사일족의 문장이 명량한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Episode 1. 볼품없는 마왕의 일상

 

한 나라에 몸이 매우 연약한 공주님이 계셨습니다. 임금님은 행여나 그녀의 병이 조금이라도 더 악화될까, 그녀를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님은 마왕에게 납치되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은 곧바로 병사들을 보내 공주님을 구해 오도록 명했지만, 마왕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족과의 세력 차이에 좌절한 임금님은 딸을 잃은 슬픔에 앓아 누었습니다.

그런 임금님을 찾아온 것은 검제라 불리는 선택받은 용사와 그의 동료들이었습니다.

부디 공주를 구해주시오. 물론 포상금은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드리겠소. 돈을 원하지 않는다면, 공주와의 결혼까지도 허락할 수 있소.

아픈 몸을 겨우 일으키며, 임금님은 그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목숨과 바꿔서라도, 공주님을 반드시 구해오겠습니다.

금발에 밤색의 눈을 가진 용맹한 용사는, 각오를 다진 듯 담담히 대답했습니다.

곧바로 용사는 동료들과 함께 마왕성으로 출발했고, 마왕을 무찌른 후 공주님을 구해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공주를 구해낸 용사와의 결혼을 허락하노라.

그렇게 공주와 용사는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

빛이라고는 책을 읽기 위해 켜놓은 작은 초 하나뿐. 그마저도 이제는 수명을 다했는지 위태롭게 심지를 태운다. 하지만 그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마지막 페이지를 끝으로 은발의 소년은 책장을 덮었다.

겉으로는 겨우 열일곱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마왕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잖아, 바보 같은 인간들아.”

마치 자신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듯, 이그나-알포네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조금의 반전도 복선도 없는 삼류소설은 역시나 재미없네.”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며, 이그나는 지루하다는 듯 투덜댔다. 그리고 장시간 굳어있던 목과 어깨를 매만지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의 위치를 통해 어느 정도 시간을 가늠해 보려 했지만, 방 한쪽에 있는 창은 두꺼운 검은 천으로 가려져 옅은 빛조차 들고 있지 않아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 딱히 상관없나.”

이그나는 앉아있던 긴 안락의자에 편히 드러누웠다. 그나마 신경 쓰고 있는, 책을 읽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만을 정리해 놓은 곳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절반쯤 펼쳐진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공주만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지.”

 

 

터벅터벅.

누군가 이그나의 서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깨에 겨우 닿을 정도의 검은 단발머리와 가지런한 외모를 소유한, 겉모습만으로 모두를 홀릴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왼쪽 눈가에는 알포네어의 가문을 뜻하는 붉은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러스트. 이그나-알포네어의 직속 하인이다.

러스트가 하는 일은 주인을 섬기는 보통 하녀와 다를 바 없지만, 어째서인지 그녀가 입은 의복은 하녀복이 아닌 남성용 연미복이었다.

남성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몸의 라인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복장임에도, 안쪽에서 연미복을 밀어 올리고 있는 풍만한 가슴이, 당장에라도 연미복에 달린 단추를 튕겨낼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마침내 서재 앞까지 다다른 러스트는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연미복 위로 걸친 빨간 나비넥타이를 재차 가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인기척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출입을 허가하는 주인의 허락이 없음에도, 마치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러스트는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눈에 들어온 광경은 어제와 똑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낡은 책들과 긴 안락의자에 누워있는 자신의 주인, 이그나-알포네어의 모습이었다.

얼굴은 책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입에서 흘러내려 뺨을 적시고 있는 타액이 그가 아직 잠들어있다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러스트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두통이라도 오는지 관자놀이에 손등을 얹었다.

서재 정리 좀 하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옅은 햇빛조차 들지 않을뿐더러, 환기도 되지 않는 허름한 방이 몸에 좋을 리 없다. 공중에 떠다니는 미세먼지는 공기를 탁하게 만들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주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제들과, 그것을 덮고 있는 먼지와 거미줄은 서로 얽히고설켜 눈에 거슬릴 정도였다.

만지는 것은 고사하고, 보는 것조차 거부감이 드는 책들을 어째서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지 러스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리 한쪽이 부러져 기울어진 긴 안락의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잠드는 자신의 주인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하인으로서 주인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기에, 러스트가 스스로 서재를 청소하려고 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그나의 완고한 고집이 그녀를 방해했다. 이제는 청소는커녕 물건에 손대는 것조차 금지 당했다. 그녀에게 허용된 것은 서재에 출입하는 것 정도였지만, 그것마저도 오로지 주인의 낮잠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러스트가 서재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검은 천을 걷어내고, 맑은 공기가 들도록 창문을 여는 것이었다.

잠깐의 통풍만으로도 금세 공기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것일까. 러스트는 악취의 원인이라 생각되는 소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그나님.”

그리고 자신의 주인, 이그나-알포네어의 이름을 불렀다.

……이그나님.”

그를 깨우고야 말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일어나지 않는 주인에게 싫증이 난 탓인지, 러스트의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으으으음…….”

하지만 칭얼대는 소리와 함께 몸을 뒤척거릴 뿐, 소년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군요. 오늘은 평소보다 진지한 훈련을 바라시는 것 같군요.”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약간의 살기가 섞여 있다. 경어 따위는 상대를 존중해서가 아닌 단순히 표면적인 것이라 말하듯, 러스트의 목소리가 서리처럼 차가워졌다.

뒤통수를 찌르는 싸늘한 시선을 느꼈는지, 한순간 움찔하던 이그나가 부스스하게 뜬 머리를 일으키며 러스트에게 인사했다.

……, 좋은 아침. 러스트.”

하루의 반나절이 지난 지 한참입니다. 이그나님.”

이렇게 별 볼일 없이 시작되는 나날이, 벌써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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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부분에서  용사가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다?  같은  뉘양스가  잘  표현되어  있는지  모르겠네요. .  그  부분은  어떤  식으로  해석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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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g가로수 02/22/12:39
글 잘 쓰시는거 같아요 프롤로그에서 용사가 오해하고 있다는 느낌도 잘 알수 있었고요
0 MENDOKUSAI 02/22/08:42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 tg가로수 02/22/12:40
아마 추리를 하자면 마왕 몸에 주인공인 누군가가 들어간거 같군요
0 MENDOKUSAI 02/22/08:41
ㄷㄷㄷ 비슷합니다. 소오름.
0 02/22/01:31
반점 사용이 너무 잦아요
줄이세요
0 MENDOKUSAI 02/22/08:41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0 풀leaf 02/22/04:41
용사가 무슨 오해를 했구나? 라고 굳이 생각하면서 읽진 않아도 문제 없어 보여서 본인이 신경 쓰인다면 모르겠지만 크게 신경 안쓰셔도 될 거 같아요.
그런데 조금 신경쓰이는 게 처음 부분에 생명이 사는 게 충족 되지 않은 곳에 세때가 사는건 조금 안일 하네요...
0 MENDOKUSAI 02/22/08:41
그 장소를 지나가던 세때.. 입니당.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0 syndrome 02/23/01:25
걸리는 부분은 없는데, 오해에 대한 걸 강조하고 싶으시면 단순 부정 이상으로 마왕이 억울해하는 걸 넣어주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아. 이대로도 뉘앙스는 느껴집니다.
0 MENDOKUSAI 02/23/10:08
조언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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